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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장안동의 개발방향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어떤 관점에서 개발사업을 바라볼 것인가 하는 점이다.
장소가 일의 터전인 사람들의 시선, 공간을 직접적으로 만드는 설계자의 시선, 그리고 개발업무를 진행하는 공무원의 시선, 장소를 찾아올 사람들의 시선 등.
그 중에서 필자가 건축가로서 바라보는 설계자의 시선은 장소를 바라보는 여러 시선 중의 하나이다. 그러면서도 다른 시선들과 같이 근본적인 고민을 가진다. 그 고민은 사회적인 이슈에서 시작된다. 장안동에는 어떤 미래가 있을까. 좀 더 생각을 확장해본다. 장안동이라는 지역을 넘어서 서울에는, 다른 도시에는 어떤 미래가 있는가. 지역을 넘어서 한국의 농업, 제조업, 서비스업에게는 어떤 미래가 있는가. 업계를 넘어서 한국의 10대, 20대, 30대, 40대, 50대, 그 이후의 세대에게는 어떤 미래가 있는가. 이 모든 것의 미래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우리의 방향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미래의 방향성을 고민하는 것이 개발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물어볼 수 있겠다. 다시 장소이야기로 돌아와 한 동네가 변화해 갈 때, 위에서 이야기했던 많은 관점에서의 고민이 함께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공간이 가지는 힘 때문이다. 공간은 그 사회의 가치관을 나타내고, 앞으로의 사회적 변화에 영향을 준다. 그 변화의 힘은 과소평가될 수 없으며, 그 영향력에 대해 우리 사회는 재평가하고 재조명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개발계획의 첫 단계로 생각되는 것이 마스터플랜이다. 마스터플랜을 통해 대규모개발이 진행될 때, 중요한 점은 전체공정이 긴 시간 동안 진행되기 때문에, 재개발을 위한 마스터플랜은 개정의 절차, 즉 유연성 있는 변화가 포함된다는 개념이 있어야 한다. 유럽 독일에 있는 함부르크라는 도시에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도시개발의 예를 살펴보자.
함부르크는 독일 최대의 항구가 있는 지역이다. 도시 자체가 금융과 무역으로 부유한 곳이다. 그러나 세계적인 무역 패러다임의 변화로 함부르크 항구는 점점 사용성이 줄어들고 있으며, 수공간을 배경으로 한 레저산업이 들어서는 등의 변화가 생기고 있는 곳이다. 이에 따라 도시 재개발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는데, 1997년에 시작되어 2030년에 완성되는 총 33년의 과정을 거치는 중이다. 총 46만평규모의 개발은 수공간과 항구의 일부 대지를 포함한다. 함부르크 하펜시티의 전체계획에는 문화공간, 주거, 사무, 상업 및 교육공간 등이 포함되고, 그 공간에서 일하고 살게 될 사람들의 수를 포함하여, 촘촘한 도시의 매트릭스, 밑그림이 완성되어간다. 마스터플랜은 블록 별로 진행되면서 전문가들의 조언과 변화를 받아들인 개정과정을 거친다. 독일 함부르크는 어떤 미래를 만들어 가고 있을까. 구도심 지역의 인구분산, 항구도시의 새로운 비전과 높은 지속가능성의 도시를 만든다는 가치관을 가지고 교육기관과 공원이 있는 주거공간, 문화공간, 해양박물관, 다양한 본사사옥들이 이 공간에 자리잡는다. 녹지와 도시인프라가 연결되고, 쾌적한 일상공간들이 만들어진다. 건축과 도시를 아우르는 전문분야에서 참여하여, 만들어낸 프로젝트이다. 이 장소의 개발은 성공적인 도시계획과 지역공모전으로 평가 받고 있다.
한국에서도 대규모 도시개발이 진행된다. 인천의 송도도 그 중에 하나이다. 프랑스에는 파리중심지역과 붙어 있는 라데팡스도 도시개발의 결과물이다. 이 두 개의 결과물이 함부르크 하펜시티와 비교할 때, 차이점은 주거와 상업을 천편일률적으로 나누어 설계가 되었거나, 장소에 문화적인 프로그램과 장소의 고유성을 담지 못했다는 점이다. 휴먼스케일이 무시된 계획은 실패한 사례로 평가 받는다. 한마디로 사람들의 지속적인 관심을 받지 못하는 장소가 된다는 뜻이다.
한국에서 사용되는 재개발과 재생이라는 단어에 대한 건전한 인식이 생겨나야 한다. 한국의 재개발은 지금까지의 결과물을 살펴보면 상가단지와 아파트주거가 들어서고, 하나의 동네가 사라지는 인식으로 남아있다. 재생은 왠지 모르게 나의 사유재산이 침해되거나 동네에 불편함을 강요하는 것 같은 인식으로 남아있다. 무엇보다 재개발과 재생이 과거에 대한 충분한 고민 없이, 현재에 필요한 프로그램과 단순한 구성만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그 필요가 임대면적과 임대료 등으로 단순하게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은 문제가 된다. 또는 장소를 과거에 묶어두는 경우도 문제가 된다. 이러한 접근은 장소가 가지는 미래의 가능성은 배제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재개발의 방향성이 아파트와 주상복합과 푸드코트를 벗어나야 한다.
실패를 겪었으니, 이제는 성공적인 프로젝트가 만들어져야 이러한 인식이 변화될 것이며, 설계자와 개발자들은 이를 위한 충분하고 복합적인 고민의 과정이 필요하다.
개발계획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랜드마크'라는 단어가 있다. 랜드마크와 함께 사용되는 '아이콘'이라는 단어가 있다. 이 두 단어는 그 의미에 차이가 있는데, 랜드마크가 장소성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아이콘은 장소성보다는 자체의 특이성을 보여준다는 의미로 쓰인다. 독일 함부르크 하펜시티개발의 초기에 시작된 프로젝트로 스위스 건축가 그룹인 Herzog & de Meuron에 의해 설계된 Elbphilharmonie Concert Hall 건축은 기존의 공장을 재활용하여, 문화장소로의 획기적인 디자인을 창조해낸 함부르크의 랜드마크라고 할 수 있다. 이를 탄생시킨 건축가는 우수하고, 세계적으로 건축의 변화를 이끄는 그룹이다. 한국건축가들의 작품들이 건축디자인을 소개하는 해외플랫폼에 몇 년 전부터 자주 소개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한국의 건축디자인이 알려지기 시작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제 막 시작된 이러한 건축시장의 변화는 작지만,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소규모 아틀리에 사무실들의 작업규모가 아직은 소규모 주택시장에 많이 머물러 있지만, 앞으로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아틀리에들이 자라나기를 기대한다. 아직까지 한국의 건축설계시장은, 공공건축물이나, 대규모 건축물의 설계를 대부분 대형 설계사무실에서 진행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물론, 그 결과물들이 건축적으로 좋은 평가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대형 설계사무실과 소규모 설계사무실로 디자인 퀄리티를 나눈다는 것이 조심스럽지만, 결과적으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유럽의 건축사무실들은 대부분 초창기에 소규모 사무실로 출발하는데, 2-3명 정도이던 사무실이 몇 십년에 걸쳐 프로젝트들을 진행하면서, 20-30명에서 많게는 1000명이 넘는 규모의 설계사무실이 되는 경우가 많다. 소규모 아틀리에라는 이름을 붙이기 어렵게 성장을 한다. 그러나 내부의 작업방식은 프로젝트별로 순수하게 건축적인 아틀리에 방식을 따른다. 대표건축가는 모든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개념설계부터 기본, 상세를 고민하고, 실시설계까지 건축사무실에서 맡아서 진행된다. 이후, 시공이 진행되는 동안 건축가의 설계감리는 권리이자 의무이다. 건축가의 역할은 명확하다. 변경이 있을 수밖에 없는 시공과정에서, 건축가는 큰 비중을 차지하며 모든 과정에서 VE(Value Engineering)에 참여하여, 전체 공정을 이끌어 간다. 디자인 퀄리티에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설계사무실의 대표가 건축가이며, 회사의 방향성에는 건축의 사회적 책임과 기여가 무게 있게 포함된다. 그렇기 때문에 대표건축가의 사회적 목소리는 비지니스의 영역을 넘어선다. 대표건축가는 그들의 작업들이 그 사회에 어떤 긍정적인 방향성을 제시하는지에 대한 세계적인 평가를 받으며, 추구하는 디자인의 방향성은 글로벌하게 건축계에 영향을 준다.
건축의 방향성은 중요하다. 방향성이라는 것은 납품도서를 준비하는 정도의 문제가 아닌, 철학적인 부분을 포함한다. 잘못된 방향성을 가지고 열심히 작업하는 것이 도리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만든다. 우리의 미래세대에게 어떤 다양성과 창의성을 실험할 공간을 제공할 것인가. 그러한 기본이 준비되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가능성과 다양성을 실험할 기회가 공정하게 주어지지 않는 것. 이러한 한계는 건축분야의 문제만은 아닌 것 같다. 많은 업계들에서, 그리고 다양한 세대들이 겪고 있는 일상적인 우리 사회의 문제이다.
새로운 도시의 아이디어는 그 장소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에 의한 지역성을 가져야 한다. 이를 보는 예민한 시각을 가진 건축가들과 함께 진행이 된다면, 성공적인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은, 과거에는 전세계적으로 유사한 근대건축을 만들던 시대를 넘어서, 지역적인 특성을 만들어내는 건축가들에게 주목하고 있다. 지역성이 새로운 패러다임인 것이다. 지역의 일상을 만들어내는 것은 그 장소의 미래를 살아갈 사람들에게 적합하며, 더 유익한 경험을 제공한다. 이제는 유럽과 남미의 건축을 비교하여, 어디 쪽이 더 우수하다고 할 수 없다. 그 이유는 각 지역의 공간에서 축척되고 있는 경험과 장소성에 더 중요한 초점을 두기 때문이다. 현재에 만들어지는 공간들이 다음 세대에서 더 발전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는 것. 그렇게 시간과 장소성이 쌓여가는 과정을 만들어가야 한다. 이제는 한국의 패러다임에 맞는 장소를 만들고, 우리 고유의 철학을 만들어 갈 시기이다. 더 이상은 외부의 이미테이션이나 모방이 아닌, 한국의 건축을 실험하는 것이다. 이런 공간의 실험은 그 시대의 가치관을 보여주고, 변화를 만들어 낸다.
과거와 미래의 시간이 공존하고, 과거와 미래의 공간이 공존하는 개발. 장안동 개발의 방향성이 이런 변화의 첫 여정이 되기를 바란다. 어려운 미사여구를 가진 건축이 아닌, 우리가 바라는 미래와 우리의 기술 그리고 쓸모 있고 아름다운 단순한 장소를 말이다.